우크라이나는 왜 피할 수도 있는 전쟁에 뛰어들었나. 우크라이나 전쟁 2년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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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과 현황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이 전쟁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의문을 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왜 피할 수 있는 전쟁에 뛰어들었는가?" 이 질문 속에는 전쟁의 동기와 현재 처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전쟁의 시작: 나토의 확장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에 대한 공통된 인식은 바로 나토의 확장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대 동안, 미국과 소련은 군사 동맹체인 나토와 WTO(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통해 충돌해 왔습니다. 소련은 서진을 막기 위해 미국과 서유럽이 나토를 만들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소련과 동유럽은 WTO를 결성했습니다.
그러나 동구권이 몰락하자, 소련은 1991년 WTO를 해체하고 물러났습니다. 이는 나토가 러시아가 있는 동쪽으로 확대하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소련의 해체 이후, 과거 소련의 동맹국이었던 폴란드, 헝가리, 체코에 이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까지 나토에 편입되면서 러시아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어, 미국이 모스크바와 러시아의 양대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다가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배경
우크라이나는 오래전부터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리던 나라입니다. 비옥한 토지를 많이 가진 나라지만, 평지가 대부분이라 적의 침공을 견제할 자연 장애물이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를 숙대밭으로 만든 몽골, 나폴레옹, 히틀러가 모두 우크라이나의 대평원을 통해 밀려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치욕의 역사로 여깁니다.
2008년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추진하자 러시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러시아 남부의 중요 도시인 볼고그라드에 미국의 탱크가 반 낮 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의 미사일이 단 5분 만에 모스크바에 떨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쟁의 전개: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모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돈바스 지역 주민이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군사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사실상 두 나라는 전쟁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나토와 합동 군사 훈련을 벌이면서 전면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외교관 조지 캐논은 나토의 확장이 러시아의 국수주의를 가져오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며 군국주의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의지와 정치적 상황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인 역학 관계만으로 전쟁을 진단한다면 우크라이나 국민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쟁을 시작한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입니다. 정치인의 무능과 부패에 신물 난 우크라이나인은 코미디언인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젤렌스키는 정치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코미디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초기 목표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돈바스 내전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했으나, 지지율이 급락하자 국민의 요구에 따라 반러 강경 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푸틴에 굴복하지 말라고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고난과 민족주의
우크라이나는 항상 독립을 원했지만, 러시아가 그 땅을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18세기 말부터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우크라이나는 공산 혁명 이후에도 소련에 편입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스탈린의 무리한 식량 증발로 3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을 때, 상당수의 우크라이나인은 독립을 위해 나치에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도 오렌지 혁명과 마이단 혁명 등에서 국민이 나섰습니다.
전쟁의 현실: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
전쟁의 현실은 매우 냉혹합니다. 2023년 1월 우크라이나 당국이 발표한 군 사망자 수는 42,000명이지만, 미국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70,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간 희생자는 10,000명 이상이며, 국내 난민 수는 무려 1,000만 명에 달합니다.
경제적인 피해도 심각합니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GDP는 30% 이상 줄어들었고, 세계은행은 향후 재건 비용이 5천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금액은 가난한 나라에서 마련하기 쉽지 않은 돈입니다.
서방의 지원과 우크라이나의 미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서방의 지원도 시들해지고 있습니다. 젤렌스키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폴란드와 같은 열성 후원국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군사 지원에 반대하는 트럼프가 다음 대선에서 재집권하는 것입니다. 서방의 지원 없이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러시아의 침략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 직전 우크라이나 정부의 결정과 행동에도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많았습니다. 서방 세계는 일찍부터 러시아의 침공을 경고했지만, 젤렌스키는 이를 무시하고 러시아를 도발했습니다.
결론: 전쟁의 복잡한 양상
우크라이나는 왜 피할 수 있는 전쟁에 뛰어들었는가? 이 질문은 전쟁의 복잡한 양상을 잘 보여줍니다. 국민의 의지와 정치적 상황, 국제적 관계가 얽히면서 우크라이나는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이해해야만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