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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봉밥에 놀란 외국인? 조선이 대식국인 이유! l 작가 홍대선 l 혜윰달, 생각을 비추다

by 작은비움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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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XnMc0x_0OV4&t=7s

 

조선의 대식국으로서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

조선은 역사적으로 많은 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킨 국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조선을 가난한 후진국으로 인식하지만, 그 이면에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의 역사적 맥락과 그 사회적, 경제적 구조를 살펴보며, 조선이 대식국으로 알려진 이유와 그 배경을 탐구해보겠습니다.

조선의 기본 이해

조선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서구 세력에 의해 여러 차례 침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의 비교 속에서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한 국가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러나 조선은 500년 이상 지속된 국가로, 그 자체로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선조는 한탄을 하며 조선의 가난함을 언급했습니다. "세상에 어찌 이렇게 가난한 나라가 있는가"라는 그의 말은 조선의 현실을 잘 나타냅니다. 조선은 농경 국가로서 주로 곡물 생산에 의존했으며, 이것이 조선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조선의 경제적 상황

조선은 경제 규모로 보았을 때 후진국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경제적 능력은 자연과 인력의 조합에 의존했습니다. 조선의 농업 생산은 주로 곡물에 의존하였고, 이는 식량의 저장성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태국과 비교할 때, 조선은 농작물 생산량이 상당히 적었습니다. 태국은 같은 농작물을 여러 번 생산할 수 있는 반면, 조선은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농업 생산량

조선 시대의 경제는 궁궐 재정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태종 때 일본의 쇼군이 보낸 코끼리 한 마리는 조선의 궁궐 재정을 휘청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코끼리 한 마리를 기르기 위해 전국의 자원이 동원되었고, 이는 조선의 재정적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조선의 사회 구조와 귀족의 사치

조선의 귀족층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의 궁궐과 대저택의 화려함에 놀랐다고 기록했습니다. 조선의 중앙 조정과 귀족은 사치스러움을 배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의 생활은 여전히 사치로 가득했습니다. 이는 조선의 경제 규모와는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송나라 사신의 기록

조선이 왜 이러한 체제를 유지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탄생 배경을 살펴봐야 합니다. 조선은 고려의 혼란을 겪으면서 탄생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조선의 건국자들은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조선의 농업 정책과 자작농의 출현

조선은 농사를 짓는 노비와 소작농의 과전법 개혁을 통해 자작농으로 변화했습니다. 이는 경자유전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조선의 중앙 조정은 귀족의 사치와 상업을 억제하며, 백성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조선의 농업 정책

조선의 사대부들은 상업과 화폐 경제를 의도적으로 억제했습니다. 이는 백성의 복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경제 규모를 줄임으로써 조선은 백성들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조선의 대식국으로서의 위상

조선은 대식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조선이 일반 백성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식문화를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반기에 서양인들이 조선에 왔을 때, 그들은 조선인의 외모와 체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던 것입니다.

조선인의 체격

서양인들은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많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는 조선이 영양학적으로도 충분한 환경을 제공했음을 의미합니다. 조선은 경제적으로 가난했지만, 백성들은 영양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조선의 문화적 측면

조선의 차례상은 단순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차 대신 술을 마시는 문화는 평등을 추구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조선이 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공동체의 유대감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반영합니다.

조선의 차례상

조선의 차례상은 단순한 허례허식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음식이 풍성하게 차려진 차례상은 공동체의 의미를 강조하고, 이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결론

조선은 단순한 후진국이 아니라, 그 나름의 복지 정책과 사회적 유대를 통해 대식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는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조선의 복지와 공동체 의식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와 비교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조선의 멸망은 또 다른 이야기로, 다음 글에서 더 깊이 다뤄보겠습니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를 넘어서, 현재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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