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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구룡성채, 건축가 시점에서 본 마계 홍콩의 범죄도시

by 작은비움 2024.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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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f_QKeI1Q6Vs

 

구룡성채는 단순한 도시가 아닌, 현대 건축과 도시 계획의 경계를 시험하는 독특한 사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홍콩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이 성채는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끝없이 쌓여 올라가며, 한편으로는 건축학적 혁신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안전과 위생의 문제로 인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무허가 건축물들이 자유롭게 증축된 결과로, 그 자체로도 하나의 사회적, 도시적 현상이었으며, 많은 건축가와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주제였습니다.

구룡성채는 홍콩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로, 밀도와 혼잡함이 극에 달한 이곳은 현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능가하는 혼돈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채가 단순히 인구 밀도가 높은 주거 지역으로만 정의될 수는 없습니다. 무질서 속에서도 독특한 질서가 존재하며, 이는 구룡성채가 완전히 붕괴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구룡성채를 분석하며, 그 안에 담긴 건축적, 사회적 요소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구룡성채의 역사적 배경과 발전 과정

구룡성채는 원래 중국의 군사 요새로 시작되었습니다. 청나라 시절, 영국의 홍콩 점령에 대응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이 요새는 홍콩과 중국 사이의 경계 지역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의 쇠퇴와 더불어 구룡성채는 점차 무정부 상태로 변해갔습니다. 영국과 중국 간의 주권 논란 속에서 이곳은 법적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점차 다양한 불법 활동의 중심지로 변모했습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구룡성채로 몰려들었고, 이로 인해 성채는 엄청난 인구 밀도를 가진 '자유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홍콩 내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없었던 사람들, 특히 무면허 의사나 치과의사 같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고, 이는 성채가 급격히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건축적 특성

제한 없는 증축과 고밀도 건축

구룡성채의 건축적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무질서 속의 질서"입니다. 건물들이 계획 없이 증축되었지만, 그 안에서 독특한 구조적 논리와 질서가 존재했습니다. 처음에는 1~2층 규모의 목조 건물이 주를 이루었으나, 철근 콘크리트가 도입되면서 점차 높이가 높아졌습니다. 결국 건물들은 16층까지 자라났고, 그 중 일부는 홍콩의 비행기 착륙 경로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어 위험성이 컸습니다.

일반적으로, 건물이 지어질 때는 기초 공사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구룡성채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거의 무시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건물이 적절한 기초 공사 없이도 16층까지 증축된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곳의 지반이 약했다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거나 붕괴될 가능성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룡성채의 건물들은 서로 빽빽하게 붙어 있어, 어느 한 건물이 무너지더라도 주변 건물들이 그 무게를 나누어 받는 구조였습니다.

빛과 통풍이 부족한 주거 환경

구룡성채 내부의 주거 환경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 때문에 자연광이 거의 들지 않았고, 통풍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낮은 층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거의 하루 종일 인공 조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건물 간의 간격은 2~3미터에 불과하여, 햇빛은 높은 층에만 겨우 닿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한국의 고시원과 비교할 수 있는데, 구룡성채 역시 외부 창문이 없는 방들이 많았습니다. 창문이 없는 방은 산소 공급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컸지만, 홍콩의 더운 기후 덕분에 창문을 열어놓는 것이 가능했고, 이는 어느 정도 환기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추운 지역에서는 창문을 닫고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범죄와 무법지대

구룡성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습니다. 법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마약 거래, 불법 의료 행위, 갱단 활동 등 다양한 범죄가 일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특히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사람들 중 일부는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의료 활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면허가 없는 의사와 치과의사들이 이곳에서 진료를 하였고, 이러한 활동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습니다.

또한, 좁은 골목과 복잡한 건축 구조는 경찰의 개입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구룡성채는 갱단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삼합회'라는 범죄 조직이 이곳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은 마약 거래, 매춘, 도박 등의 불법 활동을 통해 이익을 취했고, 일반 시민들은 이러한 범죄 속에서도 생존해야만 했습니다.

구룡성채의 철거와 재탄생

1990년대 초, 홍콩 정부는 구룡성채를 철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더 이상 범죄와 혼란을 방치할 수 없었고, 도시 미관과 안전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철거 작업은 1993년에 시작되어 1994년에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되었고, 구룡성채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많은 건축가와 연구자들은 구룡성채가 철거된 것을 아쉬워합니다. 이곳은 건축적으로 매우 독특한 현상이었으며, 만약 보존되었다면 현대 도시 계획이나 건축 연구에 중요한 사례가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구룡성채를 단순한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는 대신, 단기 이벤트나 예술 전시 공간으로 활용했더라면 성공적인 재탄생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구룡성채가 남긴 교훈

구룡성채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도시와 사회가 어떻게 진화하고 적응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곳은 인간의 생존 본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혼돈 속에서도 일종의 질서가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또한, 고밀도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경고하며, 현대 도시가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남겼습니다.

구룡성채는 이제 사라졌지만, 그로 인해 얻은 교훈들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현대 도시들이 겪고 있는 인구 밀집 문제, 주거 비용 상승, 그리고 범죄와 안전 문제 등은 구룡성채에서 나타났던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룡성채가 보여준 실수와 성공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그:

구룡성채, 홍콩, 범죄도시, 건축분석, 도시계획, 삼합회, 고밀도건축, 무법지대, 건축역사,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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