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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멸망에 전재산 2600억을 태운 남자 - 오사마 빈라덴 이야기
여러분에게 갑자기 2,600억 원의 유산이 생긴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신가요?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2,600억 원의 유산을 물려받았고, 평생 그 돈을 미국을 파괴하는 데에 올인했습니다. 오늘은 한때 미국의 동맹이자 전우였던 오사마 빈라덴이 최악의 빌런으로 변하게 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2001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됩니다. 뉴욕의 심장부에는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110층 높이의 이 건물에는 모건 스탠리 등 세계적인 회사 1,200여 곳이 입주해 있었고, 평상시에 상주하는 인원만 5만 명에 육박하는, 단일 시간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집도가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그곳의 아침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바쁘고 활기찼습니다. 그러나 아침 8시 46분, 그곳은 한순간에 지옥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린 시절과 가족 배경
오사마 빈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무함마드 빈라덴은 사우디 최대의 건설 회사인 빈라덴 그룹을 설립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빈라덴 그룹은 사우디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막대한 자산을 축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사마는 집안에서 외톨이로 자라났습니다. 어머니가 팔레스타인 출신 이방인으로, 다른 형제들보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종교적 열정과 이슬람 근본주의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오사마 빈라덴은 점차 종교에 깊이 의지하게 되었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중동은 서구 자본과 문화에 물들어 병들어 가는 곳이었습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빈라덴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무자헤딘에 합류하며 소련에 대항하는 전쟁에 뛰어듭니다.
아프가니스탄과 무자헤딘
빈라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의 물질적 지원을 자처하며 집단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시기, 미국은 소련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몰아내기 위해 무자헤딘을 지원했고, 빈라덴과 무자헤딘은 미국의 배후 지원을 받으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빈라덴과 미국은 승리한 듯 보였습니다.
알카에다의 탄생과 독자적인 노선
그러나 소련 철수 후 무자헤딘 내부에 내분이 일어나자 빈라덴은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됩니다. 그는 새로운 조직, 알카에다를 설립하고 테러 활동을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1992년, 빈라덴은 미국 해병대가 머물던 예멘의 호텔 두 곳에 폭탄을 터뜨리며 테러 활동을 시작합니다.
1993년 세계 무역 센터 폭탄 테러
빈라덴은 1993년, 세계 무역 센터 지하 주차장에서 폭탄을 터뜨리며 건물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다행히 지하 주차장만 파괴되었지만, 이 사건은 빈라덴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는 세계 무역 센터의 건축 구조와 강도를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치밀한 테러 계획을 구상하게 됩니다.
9/11 테러와 미국의 반응
2001년 9월 11일, 빈라덴은 세계 무역 센터를 향해 비행기를 돌진시켰습니다. 이 끔찍한 테러로 인해 수천 명이 사망하고, 미국 전역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미국 정부는 즉각적으로 빈라덴과 알카에다에 대한 보복을 선언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빈라덴의 도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빈라덴을 추적하였습니다. 그러나 빈라덴은 아프가니스탄 산악 지대에 숨어 탈레반의 보호를 받으며 도피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 동안에도 빈라덴은 전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지속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빈라덴 사살
빈라덴은 2011년, 파키스탄의 부촌에 있는 은신처에서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 상징적인 승리였지만, 빈라덴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깊게 남아 있습니다.
테러의 지속과 현재의 상황
빈라덴의 사망 이후에도 테러는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의 유산은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 조직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으며, 무고한 생명들이 계속해서 희생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다른 국가들은 이러한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테러의 공포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결론
오사마 빈라덴의 이야기는 단순한 테러리스트의 일생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잡한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요인들이 얽혀있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한 단면입니다. 그의 유산은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으며, 테러와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평화와 안전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태그
오사마빈라덴, 테러, 911테러, 알카에다, 아프가니스탄전쟁, 미국, 무자헤딘, 세계무역센터, 테러리즘, 빈라덴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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