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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1979년 최고의 히트곡 'My Sharona', 그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

by 작은비움 2025.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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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wLt6b9lWSAo

샤로나는 실존 인물이었다: 노래 속 주인공의 정체

세상에는 여성의 이름을 주인공으로 삼은 명곡들이 많습니다. 에릭 클랩튼의 '레이라', 롤링 스톤즈의 '앤지', 폴리스의 '록산', 토토의 '로자나'처럼 말이죠. 이들 중 어떤 곡은 허구의 캐릭터에서, 또 어떤 곡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1979년을 강타한 더 넥(The Knack)의 'My Sharona'는 실제 여성의 이름에서 비롯된 곡이었습니다.

이 노래의 주인공 샤로나 알퍼린은 당시 단순한 옷가게 점원이었습니다. 더 넥의 리드보컬 더그 피거가 25살이던 시절, 그는 당시 16살이었던 샤로나를 처음 만났고, 마치 야구 방망이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표현합니다. 이후 그녀를 향한 감정을 곡으로 승화시켰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My Sharona'였습니다.

2주 만에 완성된 대박 앨범, 'Get The Knack'

더 넥은 1978년 더그 피거를 중심으로 결성된 밴드입니다. 여러 음반사에서 거절당하며 무명 시절을 보냈지만, LA 클럽에서의 열정적인 무대가 브루스 스프링스틴, 탐 패티, 레이 만자렉 등 대형 뮤지션들의 관심을 끌며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3개 음반사 간 경쟁 끝에 캐피틀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고, 그 계약금은 레이블 역사상 최고액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데뷔 앨범 'Get The Knack'은 단돈 18,000달러, 불과 2주 만에 제작되었고, 그 안에는 바로 'My Sharona'가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발매 직후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이 곡은 단숨에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1979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비틀즈 이후 가장 빠르게 100만 장 이상이 팔린 싱글이기도 했죠.

음악계에 불어닥친 ‘역풍’, 그리고 꼰대들의 비난

하지만 성공에는 항상 그림자가 따릅니다. 당시 평론가들과 음악계 일부에서는 더 넥을 '기획 밴드', '비틀즈의 아류'라며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Get The Knack' 앨범 커버가 비틀즈의 앨범을 모방했고, 음반 라벨도 비틀즈 시절의 무지개 컬러를 썼다는 이유였습니다.

10대 청중에게 지나치게 인기가 많다는 것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브리티시 인베이전 시대를 모르는 세대에 비틀즈를 흉내 낸다”는 비아냥까지 들었습니다. 심지어 일부 뮤지션들은 '더 넥을 핵폭탄으로 날려버리자'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죠.

그러나 정작 비틀즈 역시 당대 청춘들의 열광 속에 성장했던 밴드였습니다. 시대가 다를 뿐, 더 넥의 음악에 감동한 10대들을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죠.

전자음악 시대의 도래, 그리고 더 넥의 쇠퇴

이처럼 화려하게 데뷔했던 더 넥은 그러나 다음 앨범에서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며 음악계는 디스코, 신스팝, 전자음악 등으로 빠르게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더 넥의 파워팝 사운드는 새로운 시대의 음악 스타일에 밀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죠. 오히려 ‘My Sharona’의 초대박 성공이 이후의 행보에 그림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샤로나와 더그, 사랑은 끝났지만 우정은 남았다

더그와 샤로나는 결국 결혼까지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좋은 친구로 남았고, 2010년 더그 피거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날 당시 샤로나는 자주 병문안을 오며 그의 곁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음악은 끝났어도, 감정은 오래 남은 셈입니다.

파워팝의 유산, 그리고 다음 세대의 영감

흥미로운 점은, 더 넥의 음악이 단순한 복고풍 모방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이들의 사운드는 80년대 후반 등장한 컬리지 록과 인디 록에 영향을 미쳤고,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이 앨범을 가장 좋아하는 50선에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영화 ‘리얼리티 바이츠’ 삽입곡으로 다시 주목받기도 했죠.

게다가 퀸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 제작 당시 'My Sharona'를 들려주며 “이런 록 앤 롤 사운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며칠 후 마이클이 들고 온 곡이 바로 'Beat It'이었다니, 더 넥이 음악사에 남긴 흔적은 분명 작지 않습니다.

결론: 그저 한때 유행한 노래일까, 아니면 시대를 앞서간 밴드일까

'기획 밴드'라는 비난 속에서도 더 넥은 명확한 음악적 색깔과 에너지로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남긴 'My Sharona'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닌, 시대의 전환기에 등장한 상징적인 곡이자, 다음 세대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입니다.

지금 다시 그들의 앨범을 들어본다면, 단순히 과거를 향수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미래를 예감한 사운드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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