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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이다 정치인? 이재명, 그의 굴곡진 인생과 전략적 부상

by 작은비움 202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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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U8y79uAOpso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가 본 세상의 냉혹함

이재명은 1963년 경북 안동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유년 시절은 단순한 가난을 넘어선 생존의 나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한때 교사와 경찰을 지낸 엘리트였지만,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했고, 어린 이재명은 초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매일 5km가 넘는 산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준비물은커녕 제대로 된 옷도 없이, 맞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중학교 진학도 하지 못한 채 성남으로 이주한 그는 공장에서 어린 나이에 노동을 시작했습니다. 여섯 곳의 공장을 전전하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고, 프레스 기계에 팔이 찍히는 사고를 당한 후 왼팔이 평생 불편하게 남았습니다. 이 사고는 훗날 그의 병역 면제 사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공장에서 법대까지: 자살 시도 끝에 깨달은 공부의 길

인권이란 단어조차 낯선 공장 생활 속, 싸움을 붙이는 선배들, 기계보다 못한 인간 대접에 이재명은 "여기서 내 인생을 끝낼 수 없다"는 결심을 합니다.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패스한 뒤 중앙대 법대에 진학한 그는 단 6개월 만에 전국 상위 0.2%로 성적을 끌어올렸습니다. 주관식 대신 객관식으로 입시 제도가 바뀌며 운도 따랐고, 그는 전액 장학생으로 법대에 입학했습니다.

그의 정치적 의식에 큰 전환점을 준 것은 대학 시절 접한 광주 민주화 항쟁의 진실이었습니다. 공장 시절 뉴스만 보고 '폭도'로 알았던 광주 시민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권력에 빌붙는 판검사 대신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인권변호사로서의 삶과 성남 참여연대 활동

사법연수원을 마친 이재명은 성남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환경운동, 비리 고발 등 시민운동에 투신합니다. 이 과정에서 검찰 사칭, 음주운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몇몇 전과도 생겼지만, 그는 대부분 시민운동 중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의 정치적 도약은 '성남 시립병원 설립 운동'이었습니다.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조례를 발의했으나, 시의회는 이를 개회 1분 만에 부결시켰고, 이에 반발해 의장실을 점거하다가 체포됩니다. 이 사건은 그가 직접 시장이 되어 시립병원을 세우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됩니다.

성남시장 당선과 ‘사이다 정치’의 시작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선거에서 연패했지만, 2010년 성남시장으로 당선되며 그의 정치 인생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전임 시장의 부정부패와 ‘호화청사 논란’을 기회 삼아, 시장실을 시민에게 개방하고, 9층을 2층으로 옮기는 등의 상징적 조치로 ‘화끈한 정치인’ 이미지를 각인시킵니다.

무엇보다 파격적인 조치는 부채로 허덕이던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이었습니다. 성남시의 재정을 투명하게 만들고 7000억 원의 부채를 상환했으며, 청년배당 등 주목받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형수 욕설 사건' 등 가족 문제도 수면 위로 드러나며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전국적 인지도의 시작: 판교 환풍구 사고와 SNS 전략

판교 환풍구 사고 당시 국정감사에서 당당히 맞선 모습, 촛불집회에서의 화끈한 발언 등은 SNS를 통해 확산되며 그의 인지도를 전국으로 끌어올립니다. 이재명은 광주항쟁 당시 언론 통제로 진실이 묻혔던 경험을 교훈 삼아, SNS로 직접 시민과 소통하는 전략을 이어갑니다.

논란의 연속: 혜경궁 김씨, 김부선 스캔들, 형 강제입원

경기도지사로 당선된 이후에도 그는 끊임없는 논란의 중심에 섭니다.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주인 논란, 배우 김부선과의 스캔들, 형 강제입원 논란 등으로 공격받았지만, 대부분 검찰에서 무혐의 혹은 기소중지로 마무리됐습니다.

2020년에는 ‘당선 무효’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형 강제입원에 대해 토론회에서 “그런 일 없다”고 말한 것이 허위사실 공표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이었으나, 대법원은 즉흥적 발언의 특성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경기도지사 시절의 성과와 코로나 대응

이재명은 경기도지사로서 불법 영업 철거, 지방세 체납자 단속, 대기업 갑질 규제 등 강도 높은 행정을 펼칩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신천지 교회에 대한 전수조사, 선제적 거리두기 조치 등으로 전국적인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대장동 의혹과 위기 속 회복력

2021년 대선 국면에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졌지만, 오히려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 퇴직금 사건이 불씨가 되며 역풍이 불었습니다. 이재명 측은 “성남시가 돈 한 푼 안 들이고 수익을 남겼다”고 반박했고, 여전히 이 사건은 진행 중입니다.

결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전략가, 이재명의 정치적 의미

이재명의 인생은 극단적인 빈곤에서 법조인, 정치인, 그리고 유력 대선 후보로 올라서기까지 끊임없는 전환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강한 추진력과 파격적인 언행으로 지지자와 반대자를 극명하게 가르는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그의 정책 실현력, 시대를 읽는 감각,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역량은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그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지, 그리고 그가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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