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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소금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나. ‘소금을 지배한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by 작은비움 2024.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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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tmJ18oniY5o&t=8s

 

소금이 세상을 바꾼 역사

소금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기원전 6,000년 경부터 소금은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소금을 지배한 자가 세상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은 이 작은 알갱이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소금의 본질과 인류의 의존성

인간은 태생적으로 소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아기가 자라는 엄마 뱃속의 양수는 0.9%의 염분이 섞인 바닷물과 같습니다. 즉, 우리는 소금물에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의 70%를 이루는 체액에도 0.9%의 소금이 녹아 있습니다. 혈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염분 농도가 맞지 않으면 우리 몸은 큰 탈이 나게 됩니다.

수렵 시대와 농경 시대의 변화

수렵 시대에는 인간이 따로 소금을 섭취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동물의 살과 피를 먹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원시인들이 동물의 피를 즐겨 마신 이유는 소금이 매우 귀중한 자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농경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경작한 식물에 포함된 소금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금을 따로 섭취해야 했습니다.

소금의 중심지로 모여든 인류

사람들은 소금을 만들 수 있는 바닷가나 염전 근처에 모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소금 지대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인류 최초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들은 대부분 소금 거래의 중심지였습니다. 예리코는 인류 최초의 도시로 소금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로마와 소금의 관계

로마 제국은 소금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로마를 흐르는 테베레 강에서 염전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로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소금은 식량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의 상인들은 소금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벌었고, 이 자금이 로마의 건국 자금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소금 거래

소금과 로마 제국의 확장

로마 제국의 확장은 곧 염전의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로마는 염전을 뺏거나 새로 만들며 대형 제염소를 60곳 이상 운영했습니다. 로마의 소금은 품질이 좋고 저렴하여 유럽 전역의 상인들이 로마로 몰려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긴 배경이기도 합니다.

소금의 언어적 유산

로마 군인들이 소금으로 봉급을 받았기 때문에 “셀러리”라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또한, 소금으로 절인 야채를 의미하는 “샐러드”라는 단어도 로마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부와 권력은 소금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소금의 멸망과 새로운 길

하지만 1세기에는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로마는 부의 원천이었던 염전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가 하락세로 접어든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후 소금길은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을 넘는 소금길도 있었고, 이슬람이 아프리카로 들어오는 경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소금길

베네치아와 소금의 경제

베네치아는 한적한 어촌에서 시작해 7세기 들어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천일염 생산의 최적지가 되었습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소금을 파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지중해의 소금 시장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베네치아는 중세 유럽의 최강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소금과 르네상스

베네치아의 번영은 문화의 번성을 이끌었고, 이는 결국 르네상스로 이어졌습니다. 현대 화학의 기초도 소금과 관련된 실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소금을 촉매제로 사용하여 금을 만들려 했습니다. 비록 그 마법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화학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네덜란드의 부흥과 소금의 역할

15세기 네덜란드는 청어 잡이를 통해 소금으로 부흥하게 됩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청어를 잡자마자 배에서 소금으로 염장하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로 인해 청어를 1년 넘게 보관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조업 기간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네덜란드의 청어 잡이

소금의 전쟁과 혁명

소금은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에서는 소금세가 큰 불만의 원인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소금세는 힘없는 민중들에게 의무적으로 부과되었고, 귀족들은 면제되었습니다. 이러한 불만이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소금의 전략적 중요성

전쟁 준비에서 소금의 중요성은 매우 컸습니다. 북부 군은 소금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염전을 파괴했습니다. 소금을 비축하지 못한 남부는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소금 때문에 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남미의 소금 전쟁

19세기 후반에는 남미에서도 심각한 소금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페르 앞바다의 친차 제도에서 구하노라라는 소금의 일종인 질산 칼륨을 두고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칠레가 승리하게 되며, 볼리비아는 내륙에 갇히게 됩니다.

남미의 소금 전쟁

소금의 현대적 용도

소금은 이제 단순한 조미료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화학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인간은 소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소금의 용도는 14,000가지가 넘으며, 제약, 비누, 유리, 종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재료로 사용됩니다.

결론: 소금의 지배력

소금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소금의 중요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 가치는 계속될 것입니다. 소금이 인류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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