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로 간 나치 전범의 이유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최소 5,500만 명의 사망자를 초래했습니다. 그 중 유대인 사망자는 600만 명에 달하며, 전쟁 범죄에 가담한 인원은 최소 100만 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기소된 나치 전범은 20만 명이 넘지 않고, 유죄를 받은 자는 고작 2만여 명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치 전범들이 아르헨티나로 도피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나치 전범의 아르헨티나 도피
아르헨티나로 도망친 나치 전범은 무려 5,000여 명에 달합니다. 독일 검찰이 발견한 비밀 문서에 따르면, 1940년대에 남미로 도피한 나치가 9천여 명이나 되며, 이들 중 상당수는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습니다. 브라질, 칠레, 우르과이, 파라과이 등으로도 숨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아르헨티나로 도망친 전범 중에는 유대인 학살의 핵심 인물인 아돌프 아이히만과 인체 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요제프 겔레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프의 수장인 발터 아우프도 그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이들이 남미로 도피한 이유 중 하나는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적 위치였습니다.
지리적 요인과 안전한 피신처
나치 전범들이 아르헨티나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의 체포를 피하기 용이했습니다. 남미 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의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범 문제에 무관심했고, 유럽 국가들의 영향력도 미미했습니다.
또한, 남미는 넓은 땅과 외진 지역이 많아 나치 전범들을 추적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그들의 도피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갔다면, 피부색이 달라 쉽게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 외의 백인 국가인 남미가 적합한 도피처로 여겨졌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매력
아르헨티나는 당시 웬만한 유럽보다 더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많은 나치 전범들은 유대인을 약탈한 자산을 가지고 아르헨티나로 이주했습니다. 스위스 은행들이 이들의 자산을 세탁해주는 덕분에, 그들은 아르헨티나 군부와 여러 협력자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유한 나치 잔당들은 아르헨티나의 최고의 휴양 도시인 바릴로체에서 여유로운 삶을 즐겼습니다. 바릴로체는 초콜릿으로 유명한 도시로, 나치 전범들이 주로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독일계 이주민과의 연관성
아르헨티나를 도피처로 정한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이미 많은 독일계 이주민들이 정착해 있었다는 점입니다. 1차 대전 후 많은 독일인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고, 나치가 집권한 이후에도 이민이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독일계 이주민들은 나치 전범들이 아르헨티나에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나치 전범들이 이름을 바꾸지 않거나 숨지 않고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치적 배경과 지도자의 협조
아르헨티나의 당시 대통령 후안 페론은 군 출신의 독재자로, 나치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나치 전범들을 환영하며 그들을 아르헨티나로 데려오기 위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 조직은 바티칸과 국제 적십자사와 협력하여 나치 전범들에게 가짜 신분증을 발급했습니다.
페론은 전쟁 경험이 풍부한 군인들이 아르헨티나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들을 통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나치 전범들이 가져온 자금이 아르헨티나 경제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생을 편안히 보낸 나치 전범들
남미로 간 나치 전범들은 대부분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랍으로 간 나치 전범들은 권력을 누리며 서구의 소안으로부터 보호받았습니다. 미국으로 간 나치 전범들은 NASA 등에서 일하며 오히려 미국을 발전시킨 과학자로 존경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최소 5,500만 명에 달하지만, 중형을 받은 나치 전범은 고작 600명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제 사회의 정의가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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