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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택의 후손들
이완용과 함께 조선을 일본에 팔아먹은 대표적인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근택의 후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이근택의 아들 이창호는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자기를 습작받았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친일 행위를 하며 부유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광복 이후, 충청남도 공주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이근택의 손자 이원군은 반민특위에 의해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이근택의 증손자이자 이원구의 첫째 아들은 지방 국립대에서 총장을 지낸 뒤 1998년에 사망했고, 둘째 아들은 어느 지방 대학에서 교수로 정년퇴임했습니다. 친일파의 후손을 찾고 있던 한 언론사가 이근택의 증손자이자 이원구의 둘째 아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해당 언론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냐는 질문에 신경질적으로 답하며 인터뷰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지용의 후손들
을사오적 중 또 다른 인물인 이지용의 후손들은 어떻게 지낼까요? 이지용은 조선을 일본에 넘기는데 일주한 대가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으나, 충격적으로 도박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현재 가치로 약 20억 원 정도의 돈을 하룻밤 도박으로 써버리며 전재산을 탕진한 뒤 5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이지용의 첫째 아들 이해춘과 둘째 아들 이해문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지 않았고, 대신 손자인 이영주가 조선 귀족 백작의 자리를 물려받아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친일 행위를 이어갔습니다. 광복 이후 반민특위에 의해 조사를 받게 된 이영주는 천벌을 받은 것인지 3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망하게 되죠. 이후 이지용 후손들의 행적은 찾을 수 없게 됩니다.
박승윤의 독립운동
한편, 친일파였던 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대한민국의 영웅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박승윤입니다. 1924년 대한민국을 일본에 팔아넘긴 을사오적 박제순의 손자로 태어난 그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여전히 친일파로 활동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 제국의 육군으로 자원 입대합니다. 그러나 박승윤은 스무살이 되던 해에 돌연 부대를 탈출하고 독립투사의 삶을 선택합니다.
평소 음악의 소질이 있었던 그는 야전 방송대에 파견되어 일본군으로 징집된 조선인 병사들에게 광복군 입대를 권고하는 등 다양한 심리전을 펼치며 활약합니다. 이 시절 박승윤 할아버지는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던 박승윤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또다시 자원입대해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습니다.
이완용의 후손들
친일 매국노로 악명 높은 이완용의 후손들은 어떻게 지낼까요? 이완용의 가족들은 광복 이후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았고, 결국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완용의 자식들은 625 전쟁 때 사망했고, 둘째 손자는 일본으로 귀화했습니다. 한국에 남아 있었던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영은 결국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약 20년 후, 한국에 돌아온 이윤영은 이완용의 땅을 돌려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충격적으로도 이 소송에서 승소하여 서울 부가 연동의 땅을 되찾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잠적하게 됩니다.
후손들의 삶과 역사
이완용의 후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그들은 대체로 역사 속에서 저주받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완용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조상으로 인해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루머와 편견이 생겨났습니다. 이완용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삶은 조상들의 선택과 그로 인해 형성된 사회적 인식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행동이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역사적 인물들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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