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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왕족들의 친일 행적 : 이재완, 이해승, 이해창, 이재극, 이기용

by 작은비움 2024.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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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UT03jGaVjcQ

 

대한제국의 황족들이 일본 제국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민족과 조국을 배신하고 일본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입니다. 이들이 남긴 역사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될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재완: 일본의 해결사

여기 일본의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던 대한제국의 황족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재완으로, 사도세자의 현손이자 고종의 사촌이었습니다. 그는 대한제국의 각종 이권을 일본에 넘겨준 장본인이었습니다.

이재완의 사진

이재완은 국내부 대신이자 대한철도회사 사장이었던 그는 경의선과 영남지회 철도 부설권을 일본에 넘겨주었습니다. 또한, 경성에서 가장 큰 은행인 한성은행의 은행장이 되어 제일은행권을 통용시키며 일본이 금융 시장을 장악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친일 행위는 당시 총독부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도 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재완의 금전에 대한 무한한 욕심을 간파하고, 그가 일본에 대한 공로로 큰 성공을 이루었음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재완은 죽기 직전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자신의 묘에 묘비를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는 1922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현재 그의 묘소에는 묘비 없이 상석과 성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해승: 일본의 개가 된 황족

여기 대한제국의 황족에서 일본에게 넘어간 최악의 친일파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해승입니다. 1910년 한일병합 조약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일본은 병합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황족의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이해승의 사진

이해승은 일본의 회유에 가장 빠르게 넘어간 황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으로부터 한국 병합 기념장과 함께 어마어마한 은사금을 수여받았으며, 조선 총독부로부터 토지 및 광업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권을 이용해 그는 당대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일본 육군과 해군에 국방 헌금을 납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광복 이후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어 기소되었으나, 특기가 강제해산되면서 결국 풀려났습니다. 이후 그는 625 전쟁 때 인민군에게 납북되어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이해창: 민족 계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여기 민족 계몽운동가에서 악질 친일파로 변절한 조선 왕족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해창입니다. 1865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난 그는 24세의 나이에 본격적인 관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해창의 사진

그는 애국 계몽 단체 기호용 학회에 참여하며 조선 전역에 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등 민족 계몽 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친일파로 변절하게 되고, 한일 병합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병합 기념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조선 귀족 자기와 함께 어마어마한 은사금을 받았으며, 이왕 즉위식에 초대받은 핵심 친일파들에게 수여되는 다이쇼 데의 기념장과 쇼아 데의 기념장도 모두 받았습니다.

이해창은 광복을 5개월 앞둔 1945년 3월, 79세의 나이에 노안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명단과 2008년 발표된 친일 임명 사전, 그리고 2009년 정부가 발표한 친일 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모두 올라 있습니다.

이재극: 스파이 역할을 자처한 친일파

조선 왕가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개가 되었던 최악의 친일파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재극입니다. 1864년 조선 왕가의 후손으로 태어난 그는 16살부터 관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재극의 사진

그는 1903년 법무 대신에 임명되면서 서서히 친일파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부 동양과 황실 상황을 일본에게 제공하는 스파이 역할을 자처했고, 을산 의약 체결 당시 일본의 뜻에 따라 고종을 협박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재극은 을사오적과 함께 대표적인 친일 매국노로 지목되어 독립운동가들의 암살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한일병합 찬성 단체인 정호의 부총재를 역임하며 적극적으로 친일 행위를 이어갔습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어마어마한 은사금을 받았으며, 조선 황족들을 좌지우지하는 이왕직 장관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렇게 일본의 개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다가 1927년 62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이기용: 도박꾼으로 전락한 친일파

여기 대한제국의 황족에서 도박꾼으로 전락한 최악의 친일파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기용입니다. 그는 강제병합 직후 일본 정부에게 자작 자기와 엄청난 은사금을 받으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시작했습니다.

이기용의 사진

이용은 친일 단체인 조성 귀족회의 이사를 맡아 각종 친일 활동을 이어갔으며, 심지어 일본의 방문에 이토히로부미의 무덤에 참배하는 일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박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대한제국의 황족으로 축적해온 재산을 전부 탕진하게 되었고, 어마어마한 빚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파산에 이르게 되었고, 이후 순종에게 생활비를 타며 다시 제기하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친일 행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그는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금방 풀려났고, 71세의 나이에 노안으로 사망했습니다.

마무리

이러한 친일파들의 행적은 우리의 역사에서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될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조국을 배신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거를 되새기고, 미래를 위한 올바른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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