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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눈으로 본 충격적인 일본의 문화와 조선통신사

by 작은비움 202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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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_7zdHyAzmbk

조선통신사, 일본과 교류하다

목차

🇯🇵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의 화해

임진왜란이 끝난 지 70년도 되지 않은 1607년, 일본에서 조선에 화해의 손길이 왔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새로이 막부가 권력을 잡으면서 국제관계 회복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조선 통신사를 조공을 바치러 온 사절단이라고 속여 자신들의 업적을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일본과의 화해가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이후 일본의 동향을 살피고 다시 침입하지 못하도록 회유할 필요가 있었기에, 두 나라의 정치적 의도가 맞아떨어지면서 조선 통신사 파견이 시작되었습니다.

🇰🇷 조선 통신사, 문화 교류의 장

조선 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년 동안 총 12차례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약 400-500명 규모의 사절단으로, 정사, 부사, 종사관, 제술관, 통역관 등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참여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선발했는데, 해외 견문을 넓히고자 지원하는 이도 있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 거절하는 이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구성된 통신사의 예산은 약 100만 양, 지금 돈으로 7천억 원 정도로, 전액 일본이 부담했습니다.

🇯🇵 일본인들의 통신사 열광

통신사가 일본에 도착하면 지역 전체가 들썩였고, 유행이 바뀔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섬나라 일본에서 외국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소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통신사가 쓴 글과 그림을 하나라도 받기 위해 줄을 섰고, 심지어 루머까지 생겨났습니다. 특히 마상재의 공연에 열광했는데, 통신사 방문 때마다 꼭 보내달라고 사정했다고 합니다.

🇰🇷 조선 통신사, 일본 문화에 충격

통신사들은 일본의 발전에 깜짝 놀라면서도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오사카의 번성한 상업과 화려한 건축물에 충격을 받았고, 일본의 개방적인 성문화에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녀가 함께 혼욕을 즐기는 모습, 사촌 간 혼인이나 남성 간 동성애 등 유교 윤리관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 일본 출판계의 발전

통신사들은 일본의 발달된 출판 기술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사카에서 쓴 시문이 에도에 가서 출간되어 조선에까지 전해질 정도였고, 조선과 중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책들이 일본에 많았다고 합니다. 통신사들은 이를 보고 부러워하면서도 경계하고 외면하려 했습니다.

🇰🇷 조선 통신사, 한류의 시작?

조선 통신사는 200년 가까이 양국의 문화 교류 사절단으로 활약했습니다. 이들은 일본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한류스타가 아니었을까요? 조선의 문화와 예술이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분명합니다.

조선 통신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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