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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민들의 삶: 가룸과 노동의 일상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자 거대한 문명의 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역사와 웅장한 건축물 뒤에는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로마 서민들의 일상, 특히 조각가 카시우스의 삶을 통해 그들의 생계와 식생활을 살펴보겠습니다.
카시우스의 아침식사
카시우스의 아침식사는 '파니스'라는 빵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가룸'이라는 소스를 찍어 먹지요. 가룸은 소금에 절인 작은 생선이나 내장을 발효시켜 만든 소스입니다. 로마인들은 주로 빵이나 올리브, 채소에 가룸을 곁들여 간을 맞추었습니다. 가룸은 당대 로마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진정한 로마인의 식품이었습니다.
공공 작업장 오피키나
식사를 마친 카시우스는 매일 새벽 '오피키나'라는 공공 작업장으로 나섭니다. 이곳은 여러 조각가들과 석공들이 함께 일하는 대규모 작업장이었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로마의 조각상들은 몸통과 머리 또는 팔들이 소실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로마의 기독교가 영향력을 키우던 4세기 이후 기독교도들에 의한 파괴도 일부 원인일 수 있지만, 실용성을 중시한 로마인들은 기존의 조각상의 머리나 얼굴을 새롭게 조각해 교체하는 방식이 매우 일반적이었습니다.
조각상의 재사용
예를 들어 새로운 황제가 즉위를 하면, 비용 절감을 위해 조각상 전체를 다시 만드는 것보다 머리 부분만 교체하면 간단히 해결되었습니다. 또한 황제뿐만 아니라 도시에 큰 공원을 세웠거나 막대한 후원을 했던 사람들의 조각상도 세워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조각상의 수요에 비해 공급은 한정되고 비용도 많이 들었기에 잦은 재사용을 위해 부위를 나누는 것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의 권력과 정치
이 시기에 로마 시민의 권력은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로마 제국 초기에는 시민들이 많은 정치적 권리를 누렸고, 시민들의 권력은 공화정 시기에 특히 강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황제 중심의 권력 구조가 확립되면서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차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황제와 통치자들은 여전히 시민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
특히 대중들의 지지를 무시할 수 없었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법과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가장 유명한 예가 바로 '빵과 서커스'라는 정책입니다. 검투사 경기와 전차 경주, 공공 오락 행사 등을 통해 대중들의 지지를 얻고 시민들에게 무료로 빵을 나눠주며 민심을 안정시켰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로마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 시대의 물가와 경제
그렇다면 로마 시대의 물가는 과연 어땠을까요? 서기 300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특별 칙령이 남아 있습니다. 이 칙령은 무려 1,400개가 넘는 제품과 노예 서비스에 대한 최고 상한 가격을 책정한 것입니다. 물론 카시우스가 살았던 시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격 자료는 매우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자료입니다.
일반 노동자의 하루 임금
로마 시대의 일반 노동자의 하루 임금은 15 데나리우스였습니다. 숙련된 석공은 하루에 50 데나리우스가 적정 임금이었고, 카시우스와 같은 조각상 제작자는 75 데나리우스를 일당으로 받았습니다. 사백 오십 그램 정도의 빵 한 덩이의 가격이 1 데나리우스였으며, 로마인들의 소울푸드라고 볼 수 있는 가룸은 최상급의 가격이 1 리터당 16 데나리우스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고급 식재료와 그 가격
계란은 한 개의 가격이 1 데나리우스로 측정되었습니다. 계란에서 사과까지라는 표현은 로마의 풀 코스 요리를 가리키는 관용구입니다. 일반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이 15 데나리우스였음을 감안할 때, 계란은 매우 고급 식재료는 아니지만 서민들이 매일 사서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습니다.
서민들의 주거 형태
당시 서민들의 주거는 '인술라'라고 불리던 다세대 주택이 대세를 차지했습니다. 하층부는 주로 상점들이 있었고, 상층부는 주거공간이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의 주상복합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당시에는 높은 층일수록 임대료가 저렴했습니다.
로마 시민의 삶
이제 뜨거운 테르마이의 물결이 어제의 기억을 감싸 안고 새벽을 기다리는 듯한 조용한 밤, 로마 시민의 삶은 거대한 제국의 기둥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입은 옷은 수수하고 음식은 소박했으나 그 안에는 로마의 영혼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카시우스와 같은 서민들의 일상은 단순한 생계유지를 넘어, 로마의 문화와 역사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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